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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前남아공 대통령 타계… 95세 일기
억압과 차별에 맞선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
오는 15일 장례식 국장으로… 쿠노에 영면 
더부천 기사입력 2013-12-06 10:32 l 부천의 참언론- The부천 storm@thebucheon.com 조회 9451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1918.7.18~ 20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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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흑인 인권의 상징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전 대통령이 6일 오전(한국시간) 95세로 별세했다.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이날 긴급 성명을 통해 “만델라 전 대통령이 장기간 폐렴을 앓으며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사망 소식을 전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용서와 화합의 정신을 실현한 정치인으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마지막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축구대회였다.

1918년 남아공 동남부 음베조에서 마을 족장의 아들로 태어난 만델라는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투쟁하다 46살의 나이에 종신형을 선고받도 27년동안 수감됐지만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을 꺾지 않아 흑인의 희망이 됐고,1990년 73살에 감옥에서 나오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퇴임 이후에도 남아공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면서 폐결핵 등을 앓게 됐고, 지난 6월 지병인 폐렴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했으나 자택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왔다.

95세로 타계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주의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오는 15일 요하네스버그에서 700km 떨어진 쿠누에서 치러진다. 그의 출생지인 음베조가 아닌 쿠누에는 그가 성장한 곳으로, 만델라의 세 자녀와 친인척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파란만장한 삶=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 트란스케이의 시골마을 음베조에서 남아공의 제2대 부족인 코사족에 속하는 템부족의 ‘마디바’ 가문 후손으로 태어난 만델라에게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은 ‘롤리흘라흘라 만델라’로, 롤리흘라흘라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뜻으로 ‘말썽꾸러기’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으며, 만델라는 후에 기독교 계통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은사로부터 ‘넬슨’이라는 서양식 이름을 얻었다.

만델라는 템부족 왕실이 있는 음케케즈웨니로 옮겨 당시 흑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ㆍ중ㆍ고교를 졸업하고 포트헤어 대학에 진학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대학에서 6명으로 구성된 학생회 대표로 선출됐으나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정책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노릇에 머물수 없다며 학생회 대표를 사임하면서 정학 처분을 당하고 음케케즈웨니로 돌아왔고 템부족 왕이 미리 정해둔 여인과 결혼시키려 하는 것을 피해 요하네스버그로 상경해 법률가가 되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방송통신대학인 남아공대학(UNISA) 학사과정을 이수했다.

만델라는 이 과정에서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 등 흑인 지식층과 교분을 트면서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정책에 눈을 떠 민주화 투쟁을 시작했다. 25세때인 1943년 당시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고 이듬해인 1944년에는 ANC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ANCYL)’ 창립 멤버로 참여했다.

34세때인 1952년에는 변호사 자격을 획득해 또다른 민주화운동 지도자 고(故) 올리버 탐보와 함께 남아공 최초의 흑인 법률사무소를 설립했으며, 만델라가 ANC의 중심 인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것은 1952년 당국의 차별적 조치에 맞서 전 국민이 궐기하는 불복종 운동의 동조자를 규합하는 책임을 맡아 전국을 돌며 치밀하게 지지자를 확보해 수개월에 걸친 저항운동을 벌이면서부터로, 처음으로 당국에 체포돼 5년형을 선고받지만, 이 저항운동으로 ANC는 소규모 결사조직에서 전국적으로 10만명의 회원을 지닌 강력한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백인 정권의 탄압정책은 더욱 강경해져 1960년 3월 요하네스버그 인근 샤퍼빌에서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69명이 사망하는 ‘샤퍼빌 대학살’ 사건이 발생했고, 백인 정권은 같은해 4월엔 반(反)공산당법을 발표, ANC를 불법조직으로 규정했다.

만델라는 더 이상 비폭력 저항운동으로선 민주화를 이룰 수 없다며 ANC 지도부에 무장 저항운동을 펼 것을 강력히 주장, 1961년 지하 무장조직인 ‘움콘토 위 시즈웨(민족의 창)’의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됐고, 당국의 감시를 피해 1962년 출국해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수개월 간 체류하다가 비밀리에 남아공에 귀국했으나 같은해 8월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노동자, 운전기사 등으로 변장하며 백인 정권의 감시망을 피해 다녀 경찰은 그에게 ‘검은 뚜껑별꽃’이란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만델라는 1964년 ‘리보니아 재판’에서 내란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행한 최후 진술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연설이 됐다.

그는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일생동안 투쟁해 왔다.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으며 이를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이를 위해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밝혔다.

만델라는 1964년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위치한 로벤섬의 악명높은 교도소에서 환갑을 지내는 등 18년의 옥고를 치렀고, 1982년 케이프타운에 소재한 폴스무어교도소로 이송됐다가 1988년 웨스턴케이프주 팔에 있는 빅터 퍼스터 교도소로 옮겨져 1990년 2월 출감하기까지 27년간의 긴 옥살이를 했다.

백인 정권은 노조의 파업 투쟁 등 국내적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 등 압력에 더이상 흑인탄압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 마지막 백인 대통령인 F.W.데 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하고 ANC도 합법조직으로 인정했다.

1991년 ANC 총재로 취임한 만델라는 흑인 정당 및 단체들과 함께 백인 정권과 협상에 나서 아파르트헤이트 이후의 민주화 시대에 대한 협상을 벌인 끝에 1994년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고 시장경제의 틀을 유지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 만델라가 클레르크와 함께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기가 바로 이 때인 1993년이었다.

1994년 4월27일 흑인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첫 민주적 선거에서 ANC가 다수당으로 승리했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식됐다. 헌법의 간선제 규정에 따라 국회는 다음달인 5월에 만델라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의 나이 76세 때였다.

만델라는 취임 연설에서 “자유를 향한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따로 떨어져 행동할 경우 성공할 수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단합된 국민으로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화해와 국가 건설을 위해 함께 행동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평화를 누리도록 하자. 모든 사람이 일자리와 빵, 물 그리고 소금을 갖도록 하자. 다시는 이 아름다운 나라에 압제와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강조했다.

만델라는 대통령 재임 기간 만델라는 백인사회에 대한 보복을 취하지 않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먼드 투투 주교를 위원장으로 ‘진실화해위원회(TRC)’를 출범시켜 피를 흘리지 않고 과거사를 정리했다.

백인 정권 당시 경찰, 군 등 안보기관에 근무하면서 흑인에 대한 테러와 인권 탄압을 자행한 가해자가 TRC에 출두해 진실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경우 사면하는 대화합 조치를 취했고, 이를 통해 남아공은 극심한 흑백 갈등을 겪지 않고 안정과 평화 공존의 걸을 걸었으면서 흑인과 백인이 피부 색깔이 다르지만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는 나라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만델라는 1999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퇴임했다. 헌법 규정상 재임이 가능했지만 단임으로 끝냈다. 퇴임 이후 어린이재단, 만델라재단 등을 통해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및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 퇴치 활동과 어린이 교육을 위해 기금마련과 자선활동 등 사회공헌활동을 하면서 남아공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는 2001년 전립선암 진단을 받는 등 고령으로 점차 쇠약해지면서 2004년 모든 공식활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남아공의 정신적 대통령이자 ‘살아있는 성인’으로 존경을 받았다.

남아공이 2010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축구대회를 개최할 당시 92세의 고령으로 당시 폐막식에 부인 그라사 마셸 여사와 함께 골프카트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고,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그라운드를 가로 질러 퇴장하기까지 수만명의 사람들이 ‘마디바’를 연호하고 부부젤라를 부르면서 그에 대한 극진한 애정과 존경심을 표시했다.

고령인 만델라는 지난 2011년 1월에는 호흡기 질환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만에 퇴원하는 등 호흡기 질환 증세로 병원을 찾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27년간의 옥살이를 하면서 13년을 채석장에서 노역했던 관계로 폐결핵 등을 앓게 됐고, 지난 3월과 6월에도 지병인 폐렴이 재발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9월에 퇴원했으나 자택에서 의료진의 치료를 받아왔다.

만델라는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아공을 방문하는 유명 인사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수도 프리토리아에서 900㎞ 떨어진 쿠누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006년 11월 남아공의 일간신문 프리토리아 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만델라에 대해 “(우리시대) 생존 인물 중 최고 위인”이라면서 “만델라의 위대함은 증오하기를 거부하고 다인종 국가인 남아공을 탄생시킨 것”이라며 남아공이 유혈사태없이 평화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점을 극찬했다.

유엔은 지난 2009년 11월 만델라가 태어난 7월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만델라가 67년동안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정신을 기려 이날 만큼은 세계 만인이 하루 중 67분을 할애해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자는 취지였다.

2011년 6월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남아공을 방문하면서 당시 요하네스버그 자택에 거주하는 만델라를 만났고, 2012년 8월 남아공을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일부 취재진과 수행원을 데리고 쿠누를 방문해 만델라와 면담하기도 했다.


■ 넬슨 만델라 1918~2013
무기수에서 대통령까지… 용서와 포용의 ‘아름다운 투사’


“가장 위대한 무기는 평화입니다.”

지난 5일(현지시각) 향년 95세로 생을 마감한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1918년 7월18일 남아공 동남부 트란스케이의 시골마을 음베조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25세 때인 1943년 당시 민주화 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담했다. 1944년에는 아프리카민족회의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ANCYL)’ 창립 멤버로 참여, 저항운동을 벌이다 당국에 체포돼 27년 동안 정치범으로서 옥고를 치뤘고,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 흑백차별 정책에 맞서 투쟁한 업적을 인정받아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긴 옥살이를 하면서 13년간 채석장 노역 등으로 폐결핵과 같은 호흡기 질환이 발단이 돼 지난해 말부터 폐감염증 등으로 치료를 받아온 끝내 남아공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을 마감했다.

넬슨 만넬라와 남아공 민주화 여정 일지는 다음과 같다.

-1918년 7월18일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 음베조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출생

-1943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입당

-1944년 ANC 청년조직인 ‘ANC청년동맹(ANCYL)’ 창립 멤버로 참여

-1952년 요하네스버그에서 첫 흑인 변호사 사무실 개업

-1960년 남아공 정부(백인 정권), ANC 불법단체로 규정, 계엄령 선포

-1962년 경찰에 체포

-1963년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위치한 로벤섬 교도소에 수감

-1964년 무기징역 선고받고 27년간 수감생활

-1989년 8월 프레데릭 데 클레르크 대통령 취임

-1989년 9월6일 집권 국민당, 백인 단독 선거에서 승리. 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평화 시위 허용 및 개혁 약속

-1990년 2월2일 백인 정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와 60개 이상 단체 합법화.

-1990년 2월11일 넬슨 만델라 27년만에 석방

-1990년 5월2~4일 백인 정권과 ANC, 첫 회담서 정치폭력 근절과 새 헌법 마련을 위해 협력키로 합의

-1990년 6월7일 데 클레르크 대통령, 4년간의 전국 비상사태 해제

-1990년 8월6일 ANC, 정부의 정치범 석방 동의에 무력투쟁 중단

-1991년 2월1일 데 클레르크 대통령, 최후의 주요 아파르트헤이트법 폐지 요구

-1991년 12월20일 정부-ANC-17개 정치단체, 새 헌법 협상 공식 개시

-1992년 6월17일 보이파통 폭력으로 42명 사망. ANC, 경찰이 줄루족 만행 지원 주장

-1992년 6월23일 ANC, 보이파통 학살 항의로 정치협상 철회 선언

-1993년 4월1일 흑백 다당제 회담 재개

-1993년 7월2일 흑백 협상단, 첫 다당제 선거일을 1994년 4월27일로 결정. 줄루족의 인카타자유당(IFP)과 아파르트헤이트 지지 보수 정당들은 거부

-1993년 9월23일 의회, 선거때까지 국정 운영과 백인통치 종식을 지원할 다인종 임시집행위원회 구성 법안 승인

-1993년 10월15일 데 클레르크 대통령- 넬슨 만델라,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

-1993년 11월18일 흑백지도자,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위한 새 헌법 승인

-1993년 12월7일 다인종 임시집행위원회 소집따라 흑인들 최초로 정부직(職) 진출

-1993년 12월22일 백인 의회, 흑백 평등권 인정한 새 헌법 비준

-1994년 4월19일 줄루족 IFP 지도자 망고수투 부텔레지, 총선 참여 동의

-1994년 4월21일 우파 보수당 선거 불참 선언

-1994년 4월27일 남아공 첫 다인종 자유 총선거에서 ANC, 다수당으로 승리.

-1994년 5월10일 넬슨 만넬라 남아공 첫 흑인대통령 취임.

-1999년 5년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퇴임

-2004년 공인으로서 모든 직책에서 은퇴 선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에서 생전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모습 드러내

-2013년 6월 폐감염증 재발로 입원

-2013년 9월 퇴원후 요하네스버그 자택서 치료

-2013년 12월5일 자택에서 향년 95세로 타계.


■ 넬슨 만넬라 어록

●“만약 다시 한번 살 수 있다면 다시 같은 방식으로 살겠다. 사나이로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 그렇게 할 것이다.”(1962년 11월 프리토리아 유대교성당 연설에서)

●“나는 일생을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모든 사람이 평등한 기회를 갖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필요하다면 그런 소망을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1964년 4월 내란 혐의 재판 최후진술에서)

●“난 감옥 안에 있거나 밖에 있든지 결코 누구도 상관으로 모신 적이 없다.”(1976년 7월 12일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의 이름으로 인사한다. 당신들의 지칠 줄 모르고 영웅적인 희생 덕분에 내가 오늘 여기 서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인생을 여러분의 손에 맡긴다.”(1990년 2월 27년간의 복역을 끝내며)

●“우리의 목적은 매우 강하고 많은 것을 이기고 지원한다는 것 외에 특별한 믿음은 없었다.”(1994년 2월 11일 로벤 섬에서)

●“지도자로서, 난 과거 음케케즈웨니궁에서 당시 섭정왕이 보여준 원칙을 항상 따라왔다. 난 회의에서 의견을 피력하기 전에 참석자들이 각자 무슨 견해를 가졌는지 들으려 항상 노력해왔다.”(1994년 자서전 ‘자유를 향한 긴 여정’에서)

●“비판적이고 독립적이며 탐사적인 보도는 민주주의의 활력소다. 언론은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언론은 정부 관리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언론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충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언론은 헌법의 보호를 누려야 한다. 그래야 언론이 시민으로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다.”(1994년 2월14일 만델라 어록집에서)

●“마침내 정치적 해방을 성취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가난과 상실, 고통의 노예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스스로 다짐한다. 다시는 이 아름다운 땅에서 사람이 사람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 넘치도록 하자. 신이여, 아프리카에 은총을 베푸소서.”(1994년 5월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이 속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마쳤다면 그는 평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그런 노력을 했다고 믿고 있고 그래서 영원히 잠잘 수 있을 것이다.”(1996년 만델라 어록집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특히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를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긴장된 상황이 되면 일반적으로 극단주의자들이 세를 불리고 감정이 이성적인 생각을 밀어내는 경향이 있다.”(2000년 1월16일 만델라 어록집에서)

●“27년의 옥살이가 내게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독의 침묵을 통해 말이 얼마나 귀중한 것이고 얼마나 사람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2000년 7월 더반 국제 에이즈 콘퍼런스 폐막 연설에서)

●“모든 공무로부터 은퇴를 선언합니다. 저를 쉴 수 있게 해주길 바랍니다.”(2004년 은퇴 선언에서)

●“우리 시대의 역사가 쓰여진다면 세계 위기의 순간에 등을 돌린 세대로 기억되거나 옳은 일을 했다고 기록될 것이다.”(2005년 6월 노르웨이 연설에서)

●“어떤 개인이나 분파, 단체도 우리 국민의 공익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2008년 90년 기념 생일 행사)

●“자신이 하는 일에 헌신하고 열정적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처한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성공할 수 있다.”(2009년 12월 크리킷 선수 마카야 은티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름다운 남아프리카에 대한 꿈이 있다면 그 꿈에 이르는 두 가지 길도 있다. 그것은 바로 호의와 용서라는 길이다.”(2011년 6월 넬슨 만델라 메모리센터가 펴낸 ‘자기가 본 넬슨 만델라’ 명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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